俳句하이쿠라는 시가 있다. 5-7-5조의,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길이의 정형시로 주로 계절에 따른 서정성을 지극히 함축적으로 담은 일본 전통시이다.
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
옛연못이야, 개구리날아드는 젖은물소리.
-松尾芭蕉마쓰오바쇼, 번역은 Roastbeaf.
浮世絵우키요에라는 그림이 있다. 주로 에도시대(조선후기에 해당. 전국시대 이후~메이지유신 이전)에 유행한, 대중에게 팔기 위해 제작되던 일본 전통 민화이다. 서양 미술이 소개되는 시기인 관계로 영향도 많이 받았고, 대중에게 팔기 위해(대량생산을 위해) 다색목판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이쿠의 내용을 그리는 경우도 많았고, 하이쿠와 우키요에를 겸업하는 작가도 있었다. 일부는 유럽으로 흘러가 고흐나 마네 등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화투에서 볼 수 있다 :D
하이쿠와 우키요에의 가치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상업 사회에 바탕을 둔 대중예술의 발달이라는 점에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歌川広重우타카와히로시게, 명소에도백경. |  반 고흐, Japonaiserie: Bridge in the Rain. |
東洲斎写楽토슈사이샤라쿠라는 화가가 있다. 주로 배우의 초상화를 많이 그린 우키요에 작가로, 사실적이거나 서정적인 그림이 주종이던 업계에 왜곡되고 독특한 화풍으로 활동한 작가이다. 당대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오히려 이후에 유럽에 알려지면서 재발견되어 지금은 반대로 일본에서도 크게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다.
유례가 없는 독특한 화풍과 극단적인 신상 정보의 부재, 단 10개월의 짧은 활동 기간 후 갑작스런 잠적 등 전설이 될 만한
요소는 고루 갖춘 이 로망 넘치는 천재 화가는, 그 정체에 대해 여러가지 썰을 남겼다. 그 중에는 짧은 활동기간에 비해
140건에 달하는 다작과 여러 번의 급격한 스타일 변화 등을 이유로 샤라쿠라는 개인이 아닌, 일종의 익명 창작집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셰익스피어도 비슷한 썰이 있었지 아마)
지금은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斎藤十郎兵衛사이토쥬로베라는 能노(전통연극)배우가 샤라쿠의 정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東洲斎写楽、三代目大谷鬼次の奴江戸兵衛。 김홍도 그림과 비슷한가?
김홍도라는 화가가 있다. (모르면 즐.) 조선 영정조대의 이 화가는 교조주의화되어 있던 당시의 화풍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렸다. (모르면 즐.) 1789년에는 정조의 명령으로 일본에 가서 몰래 지도를 그려 왔고, 1795년에는 연풍이라는 데서 현감이 되었는데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은 일본에 가서 간첩 겸 화가로 활동했다는 썰이 있다. 그리고 그가 바로 샤라쿠라는 썰도 꽤 널리 퍼져 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도 이 이야기가
나온다 =_=) 이 썰의 근거는 오직 하나, 1795년이 바로 샤라쿠의 활동 시기와 겹친다는 것이다. 사또가 부임하자마자 간첩질하러 바다 건너로 가버리셨으니 주민들은 얼마나 피곤했을까.
이영희라는 사람이 있다. 일찌기 조선일보에 "
노래하는 역사"라는 글을 연재하시어 万葉集만엽집 해석과 한일 고대사 연구에 신기원을 이룩하신 분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인터넷 찾아보면 많이들 나오니까 패스.
이 분께서
もうひとりの写楽 또 하나의 샤라쿠 (이영희, 河出書房新社)라는 책(일본에서만 나왔다)에서 "김홍도가 샤라쿠라는
문헌학적 증거를 발견했다"는 주장을 하셨다. 샤라쿠의 작품에서 김홍도의 이름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구해 보지는 못했지만
인용한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원문을 보지 못해서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분위기 파악은 할 수 있겠다.
...이 그림 동화에는 일본말로 풀이해서는 문법과 내용의
앞뒤가 맞지 않는 구절들이 숱하게 나온다. 이를테면, 'ちん(친:개)이라고 생각했는데 いぬ(이누:개)다'같은 구절은 일본말로는 뜻이 통하지
않을뿐더러 문장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씨에 따르면 그것은
단원과 동행한 심인이라는 의사의 이름을 의미한다. '친'은 '沈'과 발음이 같으며 개를 뜻하는 '이누'는 '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천신이 사는집을 묘사한 그림에는 '新道入口'라는 글이 적혀있다. '신'은 '새' '쇠' 곧 '金'으로 읽히며 金과 道
사이에 '口'를 넣으면 金弘道가 된다. 일본어에서 口와 弘은 모두 '고'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아무리 읽어도 그
뜻을 모른다.
나는 한국인인데 아무리 읽어도 그 뜻을 모르겠다. 이 글에는 이영희옹께서 즐겨 사용하시는 성명절기가 들어가 있다. 고대/현대 한국어와 일본어, 한자 발음 등을 마구잡이로 섞어 초중종성 중 두 개 이상 비슷하면 일단 같은 것으로 보기. 원숭이 똥꾸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원숭이는 백두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일본인은 아무리 읽어도 그 뜻을 모른다. (참고로, 처음 예시로 든 문장은 일본말로 뜻도 잘 통하고 문장도 잘 성립한다. :-P)
"나는 문헌 연구자로서 문헌학적으로 증명했다....미술사학자들이 내 주장에 반론이라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기가 문헌 연구자란다) 사실 이 분이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소위 지적설계론자들, 소위 재야사학자들, 소위 대체의학자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당한 토론이 아니다. "미술사학자"들이 저 주장에 반론을 하는 것, 그래서 진흙탕 속으로 같이 들어오는 것, 그래서 마치 자신의 주장이 단순한 썰이 아니라 정당한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설이라는 것을 광고하고 싶은 것이다. 전형적인
crank의 예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책도 꽤 오래된 물건이고(1998),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것도 아닌데
황금같은 휴일에 이따위 글이나 쓰고 앉아 있는 이유는, (누구 흉내라도 내 보려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술자리에서 김홍도가 샤라쿠 하는 소리를 하고 있길래 얄량한 성격에 참지 못하고 몇마디 했거든 =_= 게다가 누구는 영화를 찍는다는 뉴스도 있고. 그래서 누가 그런 말씀을 하고 다니나 찾아봤더니 바로 그 분이시네. 아 놔.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고(?)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 외국 화가를 이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한국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는,
물론 서양인들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는 고흐를 비롯해 우키요에의 광팬들이 많이 있었고, 이후 미술 사조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도 많이 있다. 감히 왜놈들이 서양을 가르치다니 말이 되냐고요. 유럽의 어느 분께선 샤라쿠를 세계 3대 화가 중 하나로 뽑기도 했다. 우리가 또 세계 3대 어쩌구 이런 거에 껌뻑 죽자나. 밀양이 그냥 죽쑤다가 하루만에 예매 1위로 올라 섰다메.
그러면 행여나 샤라쿠가 한국인임이 증명되면 그게 한국의 문화수준을 자랑할 만한 일이 되는가.
택도 없는 소리다. 애시당초 샤라쿠가 우키요에를 대표하는 작가도 아니고, 행여나 대표하는 작가라고 해도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그 개인이 아니라 제한적으로나마 유럽과 교류한 일본의 시대 상황, "대중이 소비하는 미술"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기반(갑자기 음란서생이 생각나는군...), 그리고 그 위에서 장르의 예술성을 개척한 수많은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설사 김홍도가 샤라쿠라고 해도, 그가 (또는 조선 사회가) 그 사회적 기반과 그들의 노력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좀 더 간단한 예들 들어보자. 누가 조치훈을 한국 기사라고 말하나? 같이 일본에서 공부한 (동문수학까지는 아니지만) 조훈현은 지금 왜 한국을 대표하는 기사인가? (그래 나 요즘 바둑삼국지 본다.)
세 줄 요약 들어간다.
1. 책 팔아먹으려는 캐사기꾼 노인네한테 속지 말자.
2. 자기 분야 아니라고 쉽게 생각하지 말자.
3. 좋아보인다고 남의 꺼 거저 먹으려고 좀 하지 말자.
ps. 30분만에 발로 쓰면 좀 미안하니까 년도랑 이름이라도 정확하게 쓰려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대박 글을 찾고 말았다. ㅋㅋㅋ 본좌 인정.
스포츠조선/ [차길진의 영혼 수첩] 김홍도는 샤라쿠인가.ps. 참고자료는
俳句と浮世絵、そして江戸時代。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시절(김향, 다빈치),
wikipedia.org, 그 외 여러 블로그에서.
ps. 볼 만한 링크 -
폴 자쿨레의 우키요에 목판화
ps. 그런데 이 노인네는 왜 일본에만 책을 낸 걸까? 한국에선 밑천이 다 돼서 낼 수가 없나?
ps. 쓰기는 접때 다 썼는데 공개 안할라다가 걍 공개로 돌림.
Posted by Roastbeaf